“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먄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이 문장은 바로 헤르만헤세의 <데미안>에서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준 쪽지의 내용이다.
이 구절은 선과 악, 이 두 세계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서 스스로 답을 발견해가는 과정을 집약하는 한 문장이기도하다.
헤르만헤세 자신이 독실한 기독교 가정 안에서 고민하고 방황했던 흔적을 그의 작품인 <데미안>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시기를 지나며 몇 가지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 두 개의 세계
책의 도입부는 싱클레어가 밝은 세계에 속해있으면서 어두운 세계를 동경하고, 이에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선과 악이 분명히 구분지어져 있으며 어둠의 세계에는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잡혀있다. 그 세계를 대표하는 친구가 바로 크로머이다. 크로머에게 일종의 두려움과 선망의 마음을 함께 가진 싱클레어는 그에게 끌려다니게 된다.
싱클레어처럼 분명한 종교적 가치관 아래 있을 때, 선과 악, 밝음과 어둠 속에 많은 고민과 혼란, 방황을 경험하게 된다. 어두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지 않아 두 세계를 경험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두 세계에서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며, 자신이 어둠을 동경하고 악을 행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기독교 집안에서 헤세도 신학교를 공부하던 중 견디지 못하고 나와 자살 기도를 했다고 한다. 인도와 중국의 사상, 종교에 심취하고 이런 저런 방황과 경험 끝에 헤세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는지 모른다.
#아브락사스
헤세는 선과 악을 명확히 구분짓는 것에 대해 성숙하지 못한 것으로 보는 듯하다. 이 책의 가장 유명한 구절 뒷부분에는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아브락사스는 선과 악, 밝음과 어둠을 동시에 품은 신이다. 즉, 우리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이 둘을 모두 인정할 때 비로소 성숙해진다는 입장이다.
이는 어쩌면 대부분의 상담에서 말하는 ‘통합’과 연결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많은 상담의 최종 목적지는 나의 다양한 부분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통합된 개체로 살아가는 것이다. 내 안에 밝음과 어둠이 모두 있다는 것을 알 때 건강한 성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어두움을 나로 인정하지 않으려 분리하고 거부하다보면 해리현상, 분열현상이 나타나기도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헤세가 추구하는 진정한 인간의 모습은 선과 악, 밝음과 어둠이라는 서로 반대되는 것을 조화롭게 통일시킬 수 있는 인간, 자기 삶의 문제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는 인간이다.
#내면에 귀 기울이는 것
“싱클레어, 잘 들어. 난 가야 해. 언젠가 너는 나를 다시 필요로 하겠지. 프란츠 크로머 같은 일로 말이야. 하지만 그때는 네가 날 불러도 쉽게 올 수 없을거야. 그땐 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나는 네 안에 계속 있을테니까.”
이 책의 마지막에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앞으로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싱클레어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라고 말한다. 책의 초반에서 데미안을 통해 크로머에게서 벗어난 것과 대조적이다. 데미안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알아가며, 분열되고 대조되었던 것을 통합해간 싱클레어는 이제 자신의 내면에서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늘 동경하고 따랐던 데미안이 이제 자신 안에 들어온 것이다. 싱클레어는 이제 그에게 얻었던 조언과 깨달음을 자신의 내면에서 찾을 수 있으며,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여 답을 찾아낼 수 있다. 나의 소리에 기울이고,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나로서 존재한다는 것.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여정일 것이다.
한 책의 해설은 이 소설을 이렇게 정리한다.
‘헤세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그리려 한 것은 바로 이런 통일성을 지닌 자아상과 그런 자아상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불완전한 존재가 부단한 노력을 통해 조화와 통일을 이루어가는 모색과 방황의 과정 말이지요. ’
'REVIEW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아몬드: 예쁜 괴물들의 성장스토리 (0) | 2021.01.10 |
---|---|
수레바퀴 아래서 – 헤르만 헤세 (0) | 2018.08.27 |
[실존심리치료] 나는 사랑의 처형자가 되기 싫다- 얄롬 (0) | 2018.02.20 |
[소설]나미야잡화점의기적 (1) | 2018.02.11 |
[심리책추천]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0) | 2017.11.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