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랜만에 책을 펼쳤다.
그리고 2021년의 첫 책이, [아몬드]여서 참 좋다 =)
책 아몬드는 제10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으로,
청소년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어른들의 태도에 대해서 돌아보게 하는 내용이 많이 담겨있었다.
작가가 책 말미에 '이 소설로 인해 상처 입은 사람들, 특히 아직도 가능성이 닫혀 있지 않은 아이들에게 내미는 손길이 많아지면 좋겠다.' '아이들은 사랑을 갈구하지만, 동시에 가장 많은 사랑을 주는 존재들이다.'
라고 적은 것처럼, 이 책은 나에게 그 바람을 불어넣어주었다. 한없이 사랑스러운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그들을 살리는 말을 전하는 어른이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감정의 기능
첫장을 넘겨서야 책표지의 아이가 무표정인 이유를 알았다.
이 책의 주인공인 윤재는 알렉시티미아, 즉 감정표현 불능증을 가진 아이다. 책 첫장의 일러두기에서는 이 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알렉시티미아, 즉 감정 표현 불능증은 1970년대 처음 보고된 정서적 장애이다. 아동기에 정서 발달 단계를 잘 거치지 못하거나 트라우마를 겪은 경우, 혹은 선천적으로 편도체의 크기가 작은 경우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편도체의 크기가 작은 경우에는 감정 중에서도 특히 공포를 잘 느끼지 못한다. 다만 공포, 불안감 등과 관련된 편도체의 일부는 후천적인 훈련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사실 우리에게 불안, 공포는 썩 달갑지 않은 감정이다. 그 감정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그 감정들은 나를 보호해주고 있다. 위험한 상황에서는 피하도록 해주고, 다칠 수 있는 상황에서 조심하게 해준다. 내가 해를 입지 않고 안전하도록 도와주는 감정인 것이다. 이런 감정을 선천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윤재는 한 아이의 죽음, 심지어 가족의 죽음 앞에서도 무덤덤하다. 친구과의 관계에서도 무채색의 빛깔로 살아가는 아이. 하지만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윤재도 다양한 관계와 경험을 통해 선명하진 않아도 희미한 여러 감정의 색들을 피워내는 걸 볼 수 있다.
번외로, 책의 제목인 아몬드는 편도체를 말한다. 아몬드 모양의 편도체는 정서 경험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앞서 설명한 것처럼 공포 경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책에서 편도체 등에 대해 설명된 부분을 보며, 작가가 뇌과학에 기반한 감정과 마음을 풀어가고자 했다는 것에 끌렸고, 그동안 심리학을 공부하며 배웠던 내용이 떠올라 반갑기도 했다.
#정상, 평범은 존재하는가
'마치 이 세상에 정해진 답은 없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남들이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한다고 해서 꼭 정해진 대응을 할 필요도 없는 게 아닐까. 모두 다르니까, 나같이 '정상에서 벗어난 반응'도 누군가에겐 정답에 속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윤재의 엄마는 희귀한 병을 앓고 있는 윤재가 '정상'범주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남들과는 다른 윤재가 튀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정상'처럼 행동할 수 있는 답을 알려주고 훈련시킨다. 감정을 알아차리고 느끼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어려운 윤재에게 이와 같은 훈련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의 표정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하는지,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상대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는지, 어떻게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릴 수 있는지에 관한 사회성 훈련이 윤재를 보호하고 윤재의 삶의 질을 보다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한다. 윤재가 커가면서 경험하는 상황의 변수는 점점 많아지고 하나의 정답을 찾기는 어려워졌다.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하나의 '정답'은 없고, 정확한 '기준', 즉 '정상'이 무엇인지 찾기란 쉽지 않다. 즉, 윤재가 비정상이고 다른 사람이 정상이라고 단정짓기 어렵다. 우리가 통상 생각하는 그것이 정답이라고 확신할 수도 없다. 윤재에게 평범하게 살도록 가르친 윤재엄마 자신도 사실 친정엄마가 원한 평범의 궤도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온 것을 보면 과연 누가 평범하고 정상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흔히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고 평범한 삶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어른보다 어리숙하다고 여겨지는 청소년들에게는 그 압력과 강요가 더 심하게 주어진다. 하지만 한 가지 상황에 다양한 답이 있을 수 있으며, 동그라미도, 세모도, 네모도 정상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관계를 통해 자라는 아이들
'곤이가 고통, 죄책감, 아픔이 뭔지 알려 주려 했다면 도라는 내게 꽃과 향기, 바람과 꿈을 가르쳐 주었다. 그건 처음 듣는 노래 같았다. '
'자란다는 건, 변한다는 뜻인가요.' '아마도 그렇겠지. 나쁜 방향으로든 좋은 방향으로든.'
이 소설에서 아이들은 크게 윤재와, 소년원에 다녀온 비행청소년 곤이, 그리고 육상을 좋아하는 도라가 소개되고 있다. 윤재는 곤이와의 만남을 통해 우정을 배우고, 도라를 통해 사랑을 알아간다. 윤재가 성장하는 데 있어 또래 뿐만 아니라 엄마와 할머니, 심박사의 관계도 윤재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나를 지지해주고 받아주는 어른들.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인 친구와의 관계. 여러 관계에서 직접 부딪히고 배운 윤재의 경험이 결국 윤재의 사회성, 감정의 색을 살아나게 했다. 결국, 윤재는 자신만의 정답을 스스로 찾아갔다. 아니, 이들과 함께 찾아간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정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기보다 자신의 세상에서 본인만 찾아낼 수 있는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 그 탐색의 장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아이들의 능력을 믿고 그 과정을 함께 해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리고 아래 심박사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생각해본 친한관계.
문득 내가 상담하고 있는 친구가 아무 목적 없이 만나는, 시시콜콜한 관계를 나누는 사이가 좋다고 한 말이 생각난다. 특별한 목적 없이도 서로를 위해 시간을 쓰는 것. 그런 관계가 있음에 감사하다.
-예를들어, 이렇게 너와 내가 마주 앉아 얘기하는 것. 같이 무언가를 먹기도 하고 생각을 나누는 것. 특별히 돈이 오가지 않는데도 서로를 위해 시간을 쓰는 것. 이런 게 친한 거란다.
-아무튼 진부한 표현이지만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난단다. 그 애가 너와 그런 관계가 될지는 시간이 알려줄거야.
#주변의 기대와 말을 먹고 자라는 아이들
'나 말이야, 그냥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생각하는 대로 살아보려고 해. 사실 그게 내가 제일 잘 아는거기도 하고.'
'그래서. 강해질 거야. 내가 살아온 인생답게. 나한테 제일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이기고 싶어. 상처받는 걸 멈출 수 없다면 차라리 상처를 줄 거야.'
'자기충족적예언' '자기실현적예언' 이라는 개념이 있다. 남들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바대로 행동을 하게 되는 경향성을 말한다. 이 개념을 잘 설명해주는 게 곤이가 아닐까 싶다. 거친 말을 하고 전과가 있는 곤이. 이런 곤이를 모두가 편견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학교에서 도난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학생들 뿐 아니라 선생님도 곤이를 의심했다. 의심이라기보다 증거없이도 곤이의 범행이 확정됐다. 아버지는 곤이가 범인인지 알아보지조차 않고 배상했다. 곤이는 곧 문제아라는 주변의 시선과 기대는 곤이로 하여금 더 어둠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든다. 그들이 원하는대로 해주겠다는 반발심을 키워갈 뿐이었다. 돌아보면 학교에 수많은 곤이가 있다. 가정에서 들은 말, 학교에서 들은 평가로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사고만 치는, 쓸모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 이들의 존재가치는 그렇게 규정되지 않음을, 그들 안에 빛나는 보석이 있음을 봐주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전해주는 사람이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는 학생을, 자녀를 어떻게 바라봐야할까
'그 사람은 내 인생에 시멘트를 쫙 들이붓고 그 위에 자기가 설계한 새 건물을 지을 생각만 해. 난 그런 애가 아닌데... ' '난 아들이 아냐. 잘못 찾아온 잡동사니지. 그래서 그 여자 죽기 전에 얼굴도 못 본 거고...'
가장 안타까운 것 중 하나는, 자녀를 바라볼 때 내가 원하는 틀, 프레임을 만들고 그것에 끼워보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잘 맞춰진다면 정말 만족스럽겠지만, 사실 아이들은 나와는 다른 인격체이다. 아무리 가깝다 한들 나의 소유가 될 수 없고, 내가 원하는 대로 빚어갈 수 없다. 곤이의 아버지는 잃어버린 아들인 곤이가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자 아들로 인정하지 않는다. 곧 죽어가는 아내에게 곤이가 아닌 윤재를 잃어버렸다 다시 찾은 아들로 소개한다. 이 과정에서 곤이는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한, 가슴 깊이 쓰라린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그냥 어디가서 부끄러운 자식만 되지 말래. 자기네들 맘대로 낳아 놓고 왜 자기들이 정한 미션을 내가 수행해야 되는데? 후회할거라고 자꾸 협박하는데 후회를 해도 내가 하는 거잖아. '
뛰는 것을 좋아하는 로나의 부모님도 로나가 자유롭게 육상을 하도록 두지 않으셨다. 부모님이 원하는 길, 진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들이 자식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사랑하기 때문에,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다. 하지만 그 사랑이 아이들을 살리고, 건강한 방향으로 자라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기존의 방식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아이를 나의 소유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바라보고, 그들의 생각과 의견을 존중해야한다. 물론 아직 철없는 말과 행동, 생각에 대해서는 도움을 주고 바른 방향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다만 어른들의 정해진 프레임에 아이들을 넣거나 그들의 인격을 무시하고 강압하는 태도는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기
'사람들은 곤이가 대체 어떤 앤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단지 아무도 곤이를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다.'
곤이를 평가 없이 바라봐준 건 다름아닌 윤재였다. 감정을 잘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했을까, 곤이를 유일하게 객관적으로 봐준, 어떤 꼬리표도 붙이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곤이는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주며 대화를 이어가는 윤재에게 마음이 끌리게 되고, 그렇게 둘은 친구가 되어간다. 로봇과 같은 삶을 사는 괴물, 세상에 삐딱한 시선을 던지며 난폭함으로 자신의 약함을 감추려는 괴물. 이 예쁜 두 괴물이 서로를 사랑으로 녹인다. 가장 어려우면서도 아름다운 것이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사랑하는 일일 것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나를 이렇게 바라봐준다면 굳어있던 마음들도 녹아내릴 수 있지 않을까. 로저스가 강조한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의 중요성이 떠오른다.
#희극일지 비극일지 모른다
심박사도 아이들을 쉽게 재단하지 않는 인물이다. 윤재가 말썽피우는 곤이를 만나는 것을 말리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난 누군가를 쉽게 재단하는 걸 경계한단다. 사람은 다 다르니까. 네 나이 때는 더 그렇고.'
한 아이의 인생이 희극일지 비극일지 단언할 수 없다. 아래는 윤재와 곤이가 나누었던 대화이다. 아이들이 어떻게 꽃피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쉽게 재단하거나 단정짓지 않고 좋은 방향으로 성장하도록 장을 만들어주는 게 어른들의 역할이 아닐까.
'브룩 실즈는 젊었을 때 알고 있었을까?늙을 거라고. 지금이랑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이 들어 있을 거라는 거. 늙는다는 거. 변한다는 거. 알고는 있어도 잘 상상하진 못하잖아. ' '그러니까 너랑 나도 언젠가는,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모습이 될 수도 있겠지.''그럴거야. 어떤 방향이든. 그게 인생이니까.'
소설의 끝에 윤재의 독백. 결국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서 '부딪혀보는 것'. 윤재가 경험과 관계를 통해 자신의 답을 찾고 여러 삶의 맛을 찾은 것처럼,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시간 안에서 충분히 경험하고 느끼고 자라나가길 바라본다. 희극일지 비극일지는 아무도 모르니 자신의 삶을 충분히 누리며 성장하길.
'말했듯이, 사실 어떤 이야기가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당신도 나도 누구도, 영원히 말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딱 나누는 것 따윈 애초에 불가능한 건지도 모른다. 삶은 여러 맛을 지닌채 그저 흘러간다. 나는 부딪혀 보기로 했다. 언제나 그랬든 삶이 내게 오는만큼. 그리고 내가 느낄 수 있는 딱 그만큼을.'
#책을 통해 누릴 수 있는 것
책을 읽으며 나를 자극한 것이 또 있다. 바로 '독서'. 작년 한 해 의미없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이런 저런 영상을 보며 시간을 때울 때가 많았다. 하지만 올해는 독서를 통해 다양한 삶을 만나고 여러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 아래 문구는 나의 독서 욕구를 자극한 내용이다.
'영화나 드라마 혹은 만화 속의 세계는 너무나 구체적이어서 더 이상 내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영상 속의 이야기는 오로지 찍혀 있는 대로, 그려져 있는 그대로만 존재했다. (중략) 책은 달랐다. 책에는 빈 공간이 많기 때문이다. 단어 사이도비어 있고 줄과 줄 사이도 비어 있다. 나는 그 안에 들어가 앉거나 걷거나 내 생각을 적을 수도 있다. 의미를 몰라도 상관없다. 아무 페이지나 펼치면 일단 반쯤 성공이다.'
'할멈의 표현대로라면, 책방은 수천수만 명의 작가가 산 사람, 죽은 사람 구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인구 밀도 높은 곳이다. 그러나 책들은 조용하다. 펼치기 전까지 죽어 있다가 펼치는 순간부터 이야기를 쏟아 낸다. 조곤조곤, 딱 내가 원하는 만큼만.'
#작가의 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봤다. 이 아이가 어떤 모습이든 변함없이 사랑을 줄 수 있을까. 기대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큰다 해도? 그 질문에서 출발해 '과연 나라면 사랑할 수 있었을까?'하고 의심할 만한 두 아이가 만들어졌고 그들이 윤재와 곤이다. 매일매일 아이들이 태어난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는, 축복받아 마땅한 아이들이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군가는 사회의 낙오자가 되고 누군가는 군림하고 명령하면서도 속이 비틀린 사림이 된다. 드물지만 주어진 조건을 딛고 감동을 주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경우도 있다. 좀 식상한 결론일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도, 괴물로 만드는 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다.'
진부하더라도 결론은 사랑이다. 이 책에서 사랑은 '예쁨의 발견'이라고 설명한다. 아이들이 가진 고유의 예쁨을 발견해주는 일.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 있을까? 예쁜 괴물들의 성장에 함께 할 수 있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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