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상대하는 일에 대한 고민 분석>
-Arlie Russell Hochschild 의 『감정노동』을 바탕으로
1. 나의 고민
(카테고리: 노동 자본주의, 조직)
나는 올해 하반기에 특별히 ‘앞으로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 사람을 상대하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에서 보람을 느끼지만, 반대로 사람을 상대하면서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고 내가 소진되는 느낌에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두려워졌기 때문이다. 나의 전공은 교육심리학과로, 앞으로 교육 또는 심리 분야의 진로를 선택할 예정이다. 특히 상담과 심리 치료 분야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중고등학생 멘토링과 평소 인간관계에서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며 사람을 다루는 직업을 가질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이러한 고민을 개인적인 특성과 기질에서만 생각해보았는데 관련 책인 앨리 러셀 혹실드 의 『감정노동』을 읽으며 구조적인 차원에서 분석을 해보았다.
2. 구조적 분석
* 감정노동의 개념
'저 사람들은 친절해야 돼, 그게 직업이니까.' 이 책의 표지에 나와 있는 이 말을 보는 순간 나는 나의 모습과 오버랩 됨을 알 수 있었다. 바로, 2년 전 학과 선배들이 진행했던 심리극이라는 곳 안에서 내가 프로타 (내담자)가 되었을 때, 나를 울컥하게 했던 말이다. 상황 극 안에서 나는 친구와 대화 하고 있었다. 그 상황은 바로 친구와 여행을 갔을 때였는데, 친구는 계속해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구했고 나는 아무 말 없이 찍어주면서 정작 내가 요구하지는 못하며 속상했던 때였다. 처음에는 크게 몰입하지 못하고 상황 극을 진행하다가 가상으로 나의 친구 역할을 맡았던 보조자아가 이 한 마디를 던졌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그것은 바로 ‘너는 원래 그렇잖아.’라는 말이었다. 즉, 원래 나는 아무 말 없이 착하고 친절하기만 한 아이지 않느냐는 말이다. 내 친구가 그런 말을 하진 않았지만, 그리고 친구에게는 어떠한 악의도 없이 그저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 것이지만 내 안에 나는 항상 친절해야 하며, 내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건드렸을 때 대체 내가 왜 그래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화가 나고, 억울하고, 스스로 답답하고 한심하여 눈물이 났던 모양이다.
그렇게 나의 관심을 끌었던 앨리 러셀 혹실드 의 『감정노동』이라는 책에서 나는 감정노동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감정노동이란 “실제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는 무관하게 업무를 해야 하는 감정적 노동을 말한다.” (Arlie Russell Hochschild, 2009:13) 즉, 낯선 이에게 늘 사랑한다고 말하고, 웃어야 사는 사람들, 웃으며 죽어가는 사람들인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이러한 감정노동자가 되어있었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감정노동자의 바람직한 모습으로 자라나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묻어두었던 나의 고민들을 이러한 현상 안에서 풀어갈 수 있는 실마리를 찾게 된 것이다.
* 감정노동 – 시장에서 감정을 억제
이러한 감정노동이라는 것은 시장의 요구에 의해 형성되었다. 농업 사회와 산업 사회를 거쳐 정보 사회에 이른 지금, 서비스 산업이 경제의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서비스 산업이 성장하면서 이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감당하는 감정노동의 강도는 계속해서 가중되고 있는 상황 속에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에서는 기업의 이윤을 위해 개인의 감정이 희생되어야 하고, 이제 개인은 육체에 이어서 감정까지 회사에 착취당하는 사회에 놓이게 되었다. 감정의 상품화와 감정 관리가 노동의 일부분이 된 감정노동사회에 들어선 것이다. (Arlie Russell Hochschild, 2009:20) 『감정노동』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감정 관리를 사용할 방법을 찾았고, 그렇게 감정 관리를 좀 더 효율적으로 조직하면서 더욱 박차를 가해왔다. 또한 감정노동을 경쟁과 연결 짓고, 실제적으로 ‘진심 어린’ 미소를 광고하고, 그런 미소를 만들도록 노동자를 훈련시키고, 노동자들이 미소를 만드는지 감독하고, 이런 활동과 기업의 이익 사이의 연결 고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 정도까지 가려면 아마도 자본주의 방식의 인센티브 체계가 필요할 것이다.” (Arlie Russell Hochschild, 2009:235)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감정 노동은 불가피 하며 매우 중요한 핵심 부분이다. 감정 노동을 필요로 하는 자본주의에서 이것을 이루어가는 인센티브 체계를 만들고, 감정 관리 조직에 박차를 가해온 것이다. 지금 우리가 우리의 감정을 희생하며 노동하고 살아가는 기반이 여기에서 닦여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부분이 이 나의 고민을 사회 구조적으로 돌아보았을 때 가장 충격적이고 정신적인 환기를 일으켜 준 부분이다. 사회 전반적인 부분에 이러한 구조가 숨어있다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의 감정을 숨기고 웃으며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이 개인적인 특징과 기질에 기반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나의 구조적 상황을 돌아보았을 때 사회적으로 강요되고 닦여진 것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 내가 맡고 있는 일, 내가 하고자 하는 일과 감정노동과의 연계
보통 감정노동이라 하면 승무원, 은행원, 전화상담원 등과 같은 직업이 떠오른다. 실제로 이들은 직접 고객을 응대하면서 자신의 감정은 드러내지 않고 서비스해야 하는 직업 종사자이다. 이 직종의 사람들은 배우가 연기를 하듯이 속내를 감춘 채 다른 얼굴 표정과 몸짓으로 손님을 대하여, 보통 감정 관리활동이 직무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Arlie Russell Hochschild, 2009:102)
하지만 감정노동은 몇 가지 직종에 한정되지 않는다. 사실 감정노동은 모든 업종에 퍼져 있다. 이러한 감정노동이 지속되면 이른바 스마일마스크 증후군(smile mask syndrome), 즉 밝은 표정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얼굴은 웃고 있지만 마음은 우울한 상태가 지속되어 감정적 부조화와 심한 스트레스가 유발된다. (Naver 지식백과, 2013)
『감정노동』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부분적으로 항공 승무원이라고 볼 수 있다. 자기 회사를 ‘유쾌하고 신뢰할 수 있는’ 곳으로 보이게 하고 자신의 상사가 ‘활기에 넘치시는 분’으로 보일 수 있게 사무실 분위기를 명랑하게 만드는 비서, ‘즐거운 식사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웨이트리스나 웨이터, 고객들이 환영받고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여행 가이드나 호텔 데스크의 직원, 고객들이 스스로 보살핌을 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염려하는 마음을 담은 눈길을 건네는 사회복지사, ‘잘 나가는 제품’이라는 확신을 주는 영업사원, 보고 있으면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추심원, 유족들의 심정을 잘 이해해준다는 느낌을 주는 장의사, 사람들로 하여금 포근하다는 느낌과 공평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목사 등. 이런 사람들도 모두 어떤 식으로든 감정노동을 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Arlie Russell Hochschild, 2009:26-27)
즉, 여러 부분에서 감정노동은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를 알아가며, 아직 직장인은 아니지만 내가 하고 있는 일도 감정노동을 포함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의 고민의 첫 시작은 바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너무 지치고 힘들다는 것이었다. 지금 하고 있는 활동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플래닝을 같이 봐주고 삶을 규모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멘토링이다. 사람이 세워지고 변화된다는 것이 너무나 큰 기쁨이고 보람이라는 것을 알지만 나의 시간과 재능뿐만 아니라 나의 감정 또한 노동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나도 힘들고 지치고 화가 나고 실망스럽지만 나의 감정은 감춘 채 그들의 감정만을 신경 쓰고 그들에게 나의 모든 것을 맞추다보니 버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스마일마스크 증후군(smile mask syndrome)으로 이어져, 얼굴은 웃고 있지만 마음은 우울한 상태가 지속되어 감정적 부조화와 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
이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일과도 연결이 된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바로 심리·상담 분야이다. 상담자로서 진실성이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모든 감정을 내놓을 수 없는 직업이다. 또한 내담자에 맞추어 그들의 변화에 집중해야하기에 내가 사라질 수도 있으며, 지금 이 상태로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으로 간다면 남을 기쁘게 하지만 정작 자신의 속은 심한 스트레스로 상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분명한 것은 내가 하고 있는 일, 내가 하고자 하는 일 모두 감정노동이 불가피한 직업이라는 것이다. 물론 심리·상담 분야는 솔직하게 나가는 개방성과 진실성이 필요한 직업이다. 하지만 내가 내담자, 즉 나의 고객을 상대하기에 나의 감정 관리는 필요한 일이 되어버린다. 나의 분야에서 감정 노동 자체를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관심 있는 분야와 내가 하고자 하는 부분들이 이미 불가피하게 감정노동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 남성보다 감정노동에 더욱 노출되는 여성
『감정노동』에서는 여성들이 감정노동에 노출되는 빈도가 더 많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남녀에게 기대되어지는 감정노동의 양상(남자-화내는 역할, 여자-참는 역할)도 다르며, 사람들은 여성에게 더 쉽게 불평불만을 표출한다고 한다. 책에서는 이를 이렇게 적어두고 있다. “사회 전반에서 진행되는 노동 분업 때문에, 어느 직업에서든 여성은 남성에 견줘 낮은 지위와 권위를 부여받게 된다. 결과적으로, 여성들은 ‘감정 원칙’에 대항할 보호막을 얻지 못한다. 여성들은 남성에 견줘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두려울 것 없이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고객 불만 접수처가 되는 경우가 많다.” (Arlie Russell Hochschild, 2009:229)
이렇게 다른 남녀의 양상 또한 나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남자는 이래야 하며, 여자는 이래야한다는 암묵적인 성역할이 사회전반에 깔려있으며, 누가 가르치지 않더라도 매체에서 비추어지는 여성의 모습과 그들의 감정노동 형태를 보고 자라 왔다. 보통 수많은 감정노동을 감수하는 직업인 텔레마케터와 승무원 간호사 등은 거의 여성의 직업이다. 무조건 웃으며 친절하고, 어떠한 손님의 진상에도 참고 일을 하는 모습에 우리는 프로라고 말을 해왔다. 하지만 이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없으며 그들은 그들의 감정을 포함하여 노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각해야 한다. 이렇게 자라오면서 내 안에도 참고 기다리며 나의 감정을 숨기고 좋은 모습만을 비추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 같다. 이제는 다시 돌아보아 이것이 진정한 친절함인지 돌아보아야 할 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 자라오면서 받은 교육들과 내 안에 내재되어있는 것들
“여러분, 근무할 때는 진심을 담아 웃어야 합니다. 미소는 여러분의 가장 큰 자산입니다. 나가서 그 자산을 활용하세요. 웃으세요. 진심을 담아서 웃는 겁니다. 진심으로 활짝 웃으세요.” (Arlie Russell Hochschild, 2009:18) 이것은 『감정노동』에 나오는 한 문장이다. 어딘가 굉장히 익숙하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많이 들어온 말인 듯하다. 어느 상황에서도 웃는 법을 배우고,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서는 숨겨왔던 우리의 모습들이다.
『감정노동』을 보면 또 이렇게 나온다. “감정노동은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하려고 자신의 감정을 고무시키거나 억제하게 한다. ……이런 노동은 정신과 기분이 잘 조절되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각자의 개성을 구성하는 본질이라고 여기는 부분까지고 다 내어주어야 할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Arlie Russell Hochschild, 2009:21)
이렇듯 나는 나의 감정과 개성을 빼앗겼는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여러 공동체에서 들었던 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요구하는 모습과 같다. ‘너의 감정을 숨기고 상품화 하여 내어놓아라. 그러면 너의 가치가 높아지고 경쟁력이 생길 것이다.’ 라고 말이다. 수업시간에 배운 종속적 주체성처럼, 주체적으로 우리가 그렇게 할 것인지 안할 것인지 선택을 하지만 그 배경과 바탕은 이미 지배적 이데올로기로 종속되어있다. 모르는 사이에 내가 배워온 가치와 교육들이 자본주의에서 원하는 모습대로 따라왔던 것이다. 지금까지 배워온 교육–나의 감정을 철저히 관리하는 것- 과 그 가운데 내 안에 내재되어있는 것들이 현재 나의 고민을 만들어내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 나의 감정과 사회에서 요구하는 감정
감정은 현실의 자기 타당성을 구별해주는 감각이다. 우리는 감정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원하고 기대했는지, 또는 우리가 어떤 식으로 세상을 인식해야 했는지 추측한다. 감정은 사물에 관한 숨은 관점을 발견하는 방식이다. 특히 자신의 위치를 정할 다른 방법이 잘 정비되어 있지 않을 때 감정은 더욱 중요해진다.
앞서 설명했듯, 감정노동을 오래 수행한 근로자의 상당수는 이른바 스마일마스크 증후군(smile mask syndrome)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억누른 채, 자신의 직무에 맞게 정형화된 행위를 해야 하는 감정노동은 감정적 부조화를 초래하며 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이를 적절하게 해소하지 못하는 경우 좌절, 분노, 적대감 등 정신적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겪게 되며, 심한 경우 정신질환 또는 자살로 이어질 수 있다. (Naver 지식백과, 2013) 이처럼 감정이라는 것은 자아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의 영역에 시장이 개입하고, 서비스 직종에서 원하는 감정 관리가 중요해지면서 나의 감정이 아닌 사회가 원하는 감정에 나를 맞추게 되었다. 이 사이에서 감정적 부조화를 느끼며 사람간의 관계에서 큰 스트레스를 느낀 것으로 생각된다.
* 올바른 자세
『감정노동』에서는 감정노동에 대한 우리의 올바른 자세로서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노동자로서, 또한 소비자로서 감정에 관한 사회공학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진심에서 우러나는 것처럼 보이는 감정 표현 전반에서 상업성을 띤 감정 표현을 구별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미소를 받아들이되 사회공학이 그 안에 집어넣은 것을 거른 뒤 정말 우리만을 위한 것으로 보이는 것만을 취하자. ‘친절한 게 저 사람 직업이다’라고 말하거나, ‘자기 상품을 팔려면 그렇게 믿어야 한다.’고 말하자. 최종적으로는, 등 뒤에서 누가 뭐라고 하건 누가 눈앞에서 웃건 관계없이 우리 고유의 소유물로 남게 될 내면의 보석인 ‘참된 자아’에 관한 생각을 채워 가는 것이다. 이 ‘참된 자아’를 더욱 내면화하고, 누구도 건드릴 수 없게 만들자. 회사의 손아귀에 놀아나던 감정을 지닌 기계로 살던 자신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나면, 우리는 ‘진짜’ 우리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남은 것에 눈을 돌리게 된다.” (Arlie Russell Hochschild, 2009:54)
즉, 불가피한 감정노동의 사회에서 끊임없이 나의 참된 자아를 찾고 내면화 하는데 힘을 쏟는 것이 올바른 자세라고 생각된다. 주위의 요구와 그들이 말하는 옳은 것을 내면화하기 이전에 나의 감정과 나의 자아에 대한 확고한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지금 교육에서는 자기마음, 즉 감정을 직시하여 관리하는 습관을 길러주는 교육과정이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우리를 잃지 않고 이 사회를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3. 느낀 점
사실 나의 고민과 과연 감정노동과 상관이 있을지 부터 약간은 의심되는 마음으로 과제를 시작하였다. 너무 개인적인 문제인데 사회 구조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면서 이 또한 구조적인 영향 아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불편하고 힘들어 나의 진로에 대해서 고민하였던 것이 나의 개인적인 결함 때문이 아닌 사회에서 요구해 왔던 무언가가 나에게 작용한 것이다. 서비스업이 고부 가치로 떠오르고 성장하면서 이 산업에서 필요한 감정 노동이 대두하게 되었고, 자본주의 안에서 감정노동은 상품화 되어 왔다. 이러한 구조 속에 철저한 감정 관리가 중요시 되었고 이것은 교육으로 이어져 이것에 맞는 교육을 받게 된 것이다. 이러한 교육과 사회 풍조 속에서 감정 노동을 경험해 오고 있었고, 그것이 지속되면서 스마일마스크 증후군을 나타내며 겉은 웃지만 속은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이처럼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를 넘어 사회 안에서 나의 고민이 만들어져가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4. 참고문헌
Arlie Russell Hochschild(2009), 『감정노동: 노동은 우리의 감정을 어떻게 상품으로 만드는가』
EBS 지식채널 e (2010), 『감정, 노동자』
[naver지식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31633&cid=43667&categoryId=43667
'STUDY > 교양'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의 서열문화, 한국어의 경어법 (0) | 2015.03.10 |
---|---|
인류학은 인류학이란 학문으로 끝나는가 (0) | 2015.03.10 |
노인인터뷰 (1) | 2015.03.10 |
말뿐인 ‘다문화에 대한 인식개선’, 실질적인 인식개선이 필요하다 (0) | 2015.03.09 |
모든 신앙인은 유통하는 자이다. (1) | 2015.03.06 |
댓글